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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개론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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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학 개론 서론

1929년 세계적인 대공황을 계기로 세계 각국이 최우선의 경제목표를 국내 경제의 안정에 두고 경쟁적으로 관세장벽을 높이고 수량 제한을 강화하는 등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는 이른바 무역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미국이 1933년 금본위 제도에서 이탈하게 되자 각국의 통화 불안과 국제결제상의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국제경제질서는 혼란을 면치 못하고 세계 무역은 극도로 위축되어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들은 자유무역을 권장하고 국제무역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GATT체제를 설립하였고 최근에는 보다 강력한 WTO를 출범시켰다. 더 나아가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FTA 협정을 맺고 있다. 본론에 앞서 자유무역 규범의 진화와 주요 특징을 다음의 표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GATT의 발생 동기

GATT의 발생 동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부터 경제적인 면에서 각국 간의 협력 체제를 이루어야 되겠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1944년 드디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창설되기에 이르렀고, 이어서 국제무역기구(ITO)의 설립이 예정되었다. 이 국제무역기구는 1945년 미국이 '세계 무역 및 고용의 확대에 관한 제안'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의 절충을 거친 결과 1948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국제무역기구 헌장(아바나 헌장)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이 헌장은 국제무역에 관한 제반사항에 대하여, 각국의 정책 기준이 될 수 있는 원칙을 정해 놓았으며, 또한 실시 기관으로서의 국제무역기구의 설립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규정이 관세를 인하하고 무역을 자유화한다는 점에만 너무 치중하고 극히 이상적인 내용으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당초 53개국이 조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안국인 미국 의회에서마저 비준을 거부한 것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이 이에 거부반응을 일으켜 결국에는 유산되고 말았다. 다른 한편, 국제무역기구 헌장의 기초 작업과 병행해서 1947년에 제네바에서는 미국이 제안한 관세 인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23개국 대표가 모여 다각적인 관세 교섭을 벌여 모든 참가국에게 평등하고 무차별로 적용될 '관세양허표(關稅讓許表)'를 작성하였는데, 여기에 국제무역기구 헌장 중에서 관세와 무역에 관계되는 실현 가능한 조항만을 추려내어 이를 다듬어 첨가하여 하나의 조약 형식을 만든 것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이다. 당초에는 국제무역기구가 성립될 때까지의 잠정적인 협정으로 만든 것이었으나, 그 후 국제무역기구 헌장의 결렬로 결국에는 관세 인하뿐만 아니라, 수입제한의 완화, 차별대우의 폐지 등, 국제무역기구가 수행하기로 되어 있던 중책을 예상치 않았던 형식으로 짊어져야 할 기관으로 변모하였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의 협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통상질서를 지배해 온 GATT체제는 막을 내리고 더욱 강력한 세계 무역기구(WTO)가 발족되어 새로운 세계 통상의 질서를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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